Uncategorized

시리아 내전 속 희망을 그리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IS와의 내전이 벌어지는 시리아에서 잔야르 옴라니 취재원이 보내온 편지

아래 내용은 시리아 취재원, 잔야르 옴라니 씨가 <조선Pub>에 보내온 현지 소식을 번역한 것입니다. 옴라니씨는 일기 형식으로 현지에서 겪은 상황을 생생히 기록했습니다. 이 시리아 현지 정황을 단독으로 <조선Pub>이 공개합니다.

잔야르 옴라니 씨는 2014년 10월쯤 IS와 쿠르드족 민병대 간의 치열한 전쟁이 벌어지던 코바니(Kobani)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이란으로 다시 돌아갔다가, 2015년 2월 다시 시리아로 들어가 IS에 대항해 싸우는 쿠르드족 민병대 및 쿠르드족들의 일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시리아에 있습니다.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글 | 잔야르 옴라니 프리랜서 다큐멘터리 필름 제작자

본문이미지
그래피티 아티스트 오마르(좌측)과 램(우측) /사진 잔야르 옴라니
시리아에서 그래피티(graffiti)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피티는 일종의 예술행위로서 사회적 혹은 정치적 저항을 대변한다. 이 그래피티를 보고 누가 이런 그림들을 그렸을까 하고 궁금증을 자아낼 무렵 이 그래피티를 그리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만난 두 명의 젊은이 오마르 시유크(Omar Shiyukh)와 램 아슬란(Ram Aslan)씨는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이다. 시리아의 내전상황이 이들에게 범죄(그래피티를 그리는 행위)를 범할 공간을 허락해주고 있었다. 이들이 그래피티로 점령한 아뮤다(Amuda)라는 도시는 시리아의 북부에 자리한 작은 도시이다.
그래피티는 최근 젊은이들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는 예술이다. 비교적 그리는 데에 필요한 도구도 적은 편으로 페인트와 붓 그리고 공허한 벽만 있으면 된다. 이들의 그래피티가 단조로운 시리아를 다양한 색채로 물들이고 있었다.
시리아 내전이 발발한 이후, 시리아의 학생들은 알 아사드 정권이 물러나기를 바라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은 독재정권으로 2000년부터 지금까지 정부를 운영하고 있으며, 헤즈볼라 등의 테러집단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사드 정부는 정부에 대항한 그래피티 아티스트, 무하마드 콘지(Mohammad Khonji)를 체포하고 정부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처형하고 있다.
본문이미지
시리아의 그래피티, 아뮤다 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Welcome to Amuda)는 말이 쿠르드어로 그려져 있다. /사진 잔야르 옴라니
쿠르드족의 신년행사인 뉴로즈가 IS의 자살폭탄테러로 공격받은 이후에도 나는 계속 자지라 주(州) 안에 머물고 있다. 폭탄테러 이후로도 사람들은 하나 둘 모이기만 하면 그 폭탄테러 이야기를 하곤 한다. 이렇게 암울한 도시의 분위기와 어두운 시리아의 도시전경에서 무언가 색다른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래피티이다. IS의 지속적인 공격이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이런 그래피티를 마주할 수 있는 것은 다행이다. 2차원 평면의 벽안에서 3차원의 그래피티를 보고 있을 때면 나는 신기해서 놀라곤 한다.
그래피티를 그리는 사람들은 젊다. 22살 밖에 되지 않은 램과 오마르는 그들의 복장에서도 시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벙거지 모자를 눌러쓰고 검은색의 후드티를 입고 있다. 나는 그래피티를 그리던 램 씨에게 무엇을 그리고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이며 “뭘 그리려 했는지 까먹었어요. 몰라요.”라고 차분한 어조로 답했다.
본문이미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그래피티 아티스트, 램 씨 /사진 잔야르 옴라니
나는 그의 그래피티 안에 이슬람의 정통 칼리파(Caliph) 종교를 상징하는 의미가 담겨있는지 물었다. 하나, 그는 “난 무신론자입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램과 오마르는 무신론자이자 무정부주의자다. 그래서 그들은 정부 없이 운영되는 IS를 진정한 이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시리아에 램과 오마르 씨처럼 그래피티를 그리는 사람들은 많다. 그러나 쿠르드족 거주지에서 그래피티를 그리는 사람들은 이 둘뿐이었다.
이 둘은 ‘다른 쿠르드족 밀집거주지역에도 그래피티를 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사드 정부의 경찰들이 자신들을 억압해서 다른 시리아의 도시로 이동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중동권에서는 비교적 다른 나라보다 억압받고 있다. 다른 그래피티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예술이 시리아의 내전과 갈등의 고통을 줄여 주었습니다. 예술은 사람들은 물론 전장의 군인들과도 함께하는 것이며, 이런 전쟁의 고통을 줄여주는 예술의 효과를 사람들이 깨닫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라고 램 씨가 말했다.
본문이미지
램과 오마르 씨가 가지고 있는 그래피티 도구들 /사진 잔야르 옴라니
램 씨와 오마르 씨의 그림은 시리아의 벽들만 채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그래피티를 공개하고 있다. 이들의 그림은 페이스북에서 약 2,000개 이상의 좋아요를 받기도 했다.
이 두 청년은 그래피티와는 무관한 농업공학(agricultural engineering)을 대학에서 전공했다. 이 때문에 인터넷과 책을 통해서 그래피티를 그리는 방법을 배웠다고 한다. 이들이 즐겨듣는 음악은 록(rock)이다. 좋아하는 밴드는 메탈리카(Metalica), 드라코니안(Draconia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린킨파크(Linkin Park) 등이다.
본문이미지
그래피티 아티스트 대니 씨가 희망이라는 단어를 쿠르드어로 그리고 있다. /사진 잔야르 옴라니
램과 오마르 씨는 사진가다. 사진을 찍으며 돈을 번다. 하나, 이들은 그래피티가 자신들의 본업이라고 말한다. “그래피티가 우리의 주된 업무입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우리의 그래피티를 더 확장해서 더 많은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을 시리아에 만들 겁니다.”
나는 이들의 뒤를 따라서 이들이 그린 그래피티를 보러갔다. 오래전에 그린 그래피티들은 색이 바랬다. 시간이 지나고 비를 몇 번 맞으면 쉽게 색이 변한다. 이는 이들이 사용하는 재료가 좋지 못한 탓이다. 이들이 처음 그린 그래피티는 희망(hope)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들은 이 척박한 시리아의 내전 속에서 희망을 그림으로써 시리아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있었다.
본문이미지
도로 옆 벽에 그려진 그래피티, 되는대로 살라(Live Simply)라는 말이 아랍어로 적혀 있다. /사진 잔야르 옴라니
나는 이들이 어디서 이런 그래피티의 영감을 얻는지 궁금했고 질문을 던졌다.
“책을 자주 읽나요?” 그러자 램은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의 책을 주로 읽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이런 책을 읽으면서 삭막한 시리아에서 버티고 있다고 했다.
길을 걸으며 오마르가 한숨을 내쉬며 멀리 있는 벽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기 보이는 벽들은 그림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입니다. 그런데 집주인들이 반대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우리가 그린 그림으로 문제가 될까봐 걱정하고 있습니다.”
길을 걷다보니 정치인의 얼굴이 그려진 벽을 만났다. 그 벽을 보자마자 오마르와 램 씨는 이건 우리의 그림이 아니라고 잘라말했다. “이건 다른 사람들이 그린 겁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우상화하지 않습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장마철이 지나면 그래피티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그래피티를 가르칠 예정이다. 자지라 주에서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색이나 붓을 제공해주기도 하지만 이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 도구들은 늘 부족하다.
본문이미지
완성된 그래피티 앞에 포즈를 취한 오마르와 램 그래피티 아티스트, 아랍어로 시리아 내전이 촉발되었던 도시, 코바니(Kobane, Kobani)가 적혀있다. /사진 잔야르 옴라니
도구보다 더 열악한 것은 이들이 그래피티를 그릴 공간의 확보이다. 본래 그래피티는 빈 공간이 있으면 곧장 그림을 그려넣는게 그래피티가 가지는 매력이다. 하나, 자지라 주에서 이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그림을 그리기 전에 주인에게 허락을 받고 있다. 쿠르드족들 중 일부는 이들이 그리는 그림을 싫어하기 때문이다.
현재 시리아는 내전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를 떠난 상태다. 당연히 취업의 기회가 없다. 직원을 구하는 기관도 없다. 대부분의 청년들은 시리아를 떠났지만 램과 오마르는 남았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우리는 이곳(시리아)의 상황이 어떻게 되더라도 남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도시를 떠난 젊은이들도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왜냐하면 도망가는 것은 도시를 재건하는 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습니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들이 쿠르드족 민병대에 합류하여 전쟁에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램과 오마르는 “쿠르드족의 여자들(YPJ)이 우리보다 더 강합니다. 우리는 그 여자들처럼 강하지 않습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본문이미지
테러를 중단하라(Stop the Terror)라는 말이 쿠르드어로 쓰여있다. /사진 잔야를 옴라니
시리아에서
잔야르 옴라니
<본 기사에 포함된 사진과 내용 무단 배포 금지, 저작권은 <조선Pub>에게 있습니다.>

등록일 : 2015-05-01 오전 3:53:00   |  수정일 : 2015-05-01 12:36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