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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향한 일갈 “용서를 함과 동시에 용서를 구한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럽의 화해와 협력: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함의(含意)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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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회사를 하고 있는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지난 11일, 일본 위안부 피해자인 김외한(81세) 할머니와 김달선(91세) 할머니가 각각 오후 8시 40분과 9시 15분쯤 약 35분의 시차를 두고 별세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정기시위에 참석해 일본정부의 정식사죄를 요청해왔다.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인신매매 피해자’라는 망발을 하는 등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이 유럽 국가들에게 취한 사죄와 화해의 의미를 동아시아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6월 17일, “세계 2차대전 이후 유럽의 화해와 협력: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함의(含意)” 라는 주제로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포럼(forum)이 개최됐다. 이 행사는 올해 세계 2차 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전쟁 이후 독일과 유럽국가들 간의 화해를 되새겨보자는 취지로 성사된 것이다.

이 자리에는 롤프 마파엘(Rolf Mafael) 주한 독일대사, 찰스 헤이(Charles Hay) 영국대사, 크쉬슈토프 마이카(Krzysztof Ignacy Majka) 폴란드대사, 에티엔 롤랑 피에그(Etienne Rolland-Piegue) 프랑스대사관 수석 참사관,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 등이 참석했다. 이날 포럼은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이어졌다. 일본 대사관에선 관계자 2명(1등 서기관 등)정도가 나와 관객석에서 행사 내용을 참관했다.

개회사에 나선 함재봉 아산정책연구원장은 “포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참가를 희망한 4개국의 대사관은 동아시아에 교훈(lesson)을 준다는 점이 부담된다며, 단지 정보를 공유하는 차원의 자리가 되길 바란다는 의사를 타진해왔다”면서 “그러나 이번 주제는 분명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 이번 회의의 부제(副題)를 ‘동아시아 지역에 대한 함의(Lesson for East Asia)’로 정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한국이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를 거듭 요청하고 있음에도 일본 정부가 적극적인 사과 의사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국내 여론의 분노를 유럽의 주한 대사관들이 고려했다는 배경 설명이었다.

프랑스는 전쟁 이후 독일을 더 이해하려고 노력해
포럼의 첫 번째 세션에선 찰스 헤이 영국대사가 회의 진행자로 나서고 에티엔 롤랑 피에그 프랑스 수석 참사관과 휴 미아엘(Hugh Miall) 영국 켄트대학교 교수가 토론자로 발표했다. 롤랑 피에그 참사관은 자신이 겪은 에피소드를 토대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프랑스의 관계를 묘사했다.
내가 살던 프랑스 마을은 역사적으로 독일과 프랑스 간의 큰 전쟁을 세 번이나 치렀다. 독일을 논하지 않고서는 내가 살았던 마을을 설명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독일군에 점령당하기도 했다이 때문에 나는 어렸을 때 동네 친구들과 전쟁놀이를 하곤 했는데, 항상 독일과 프랑스로 편을 나눠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가르친 마을의 학교 선생님은 물론이고 나의 부모님도 독일을 적대시하지는 않았다나의 아버지는 유창한 독일어를 구사하신다그런 영향을 받아 나도 어릴 적부터 독일어를 배웠고, 그 덕분에 독일 프랑크프루트에서 기자로 일하는 독일인과 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다그 뒤로 프랑크프루트에 사는 그 독일인의 집을 정기적으로 방문했으며 그 독일인의 집은 마치 나의 두 번째 고향처럼 편안했다.
이런 나의 성장과정은 프랑스 정부의 친()독일정책 때문이다프랑스 교육부는 프랑스 학생들이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선택할 경우 우등반에 들어갈 수 있는 가산점(incentive)을 제공하기도 했다또 프랑스 학생들이 독일 철학을 배울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한마디로 프랑스는 전쟁 이후에도 독일과의 화해를 위한 노력을 쏟아왔다는 말이었다이어서 발표한 휴 미아엘 영국 켄트대 교수는 유럽에서는 국가 간의 깊은 화해(和解, deep reconciliation)를 이루기 위한 노력을 해온 반면에 동아시아에서는 그런 노력이 적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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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중인 찰스 헤이 영국대사(왼쪽), 에티엔 롤랑 피에그 프랑스 대사관의 수석 참사관(중앙), 휴 미아엘 영국 켄트대학 교수 (오른쪽)
英 대사피해를 준 국가의 적극성이 기본적인 화해의 요건
질의응답 시간에 기자는 앞서 진행된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토론자들에게 던졌다.
유럽의 화해(reconciliation)가 가지는 의미가 동북아에서 보는 의미(definition)와 차이가 있는 것 같다동북아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피해국가인 한국과 중국에게 잘못을 사죄하는 것’만을 화해의 의미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즉 피해를 입은 국가들이 이런 일본의 사죄에 만족을 해야 한다그런데 앞서 유럽의 내용을 보면 피해를 입은 국가들도 화해를 위한 전 방위적인 노력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유럽에서 생각하는 화해의 정의는 무엇인가
이에 찰스 헤이 영국대사는 화해(reconciliation)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사과를 하는 자와 사과를 받는 자로 구분된다따라서 이것은 기본적으로는 상호간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다유럽에서는 영국과 독일’ 그리고 프랑스와 독일의 관계에서 보았듯이 기본적으로 사죄를 하는 독일의 노력이 화해의 기초가 되었다사과를 하려는 노력이 약하다면 당연히 화해가 이루어지는 데는 오랜 기간이 걸릴 수 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화해를 위해선 피해를 입은 국가도 노력해야
휴 미아엘 교수는 “화해는 협상의 과정(negotiation process)이며 이를 통해 하나로 통일된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에는 단계 과정(steps)이 필요하며 동아시아에서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으로는 사과를 해야 하는 쪽이 더 적극성을 보이는 것이 좋지만, 사과를 받는 쪽 역시 화해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일례로 EU의 모체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는 프랑스의 정치가인 로베르 슈망(Robert Schuman)이 주도했다. 이처럼 피해를 당한 국가의 적극성도 화해를 달성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롤랑 피에그 참사관은 미아엘 교수에 이어 로베르 슈망을 언급하면서 슈망 선언문(the Schuman Declaration)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유럽의 통합은 한 번에 이루어질 수 없고, 단일 계획만으로 만들어질 수도 없다. 유럽은 구체적인 성과를 통해서만 통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이 그 구체적인 성과의 수순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동북아의 통일된 유대성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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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프 마파엘 독일 대사 /사진 김동연 
독일을 용서함과 동시에 독일에게 용서를 구한다
단상 위의 토론자가 아니었음에도 롤프 마파엘 독일 대사는 관객석에서 마이크에 대고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을 해주었다.

“1965년, 폴란드 가톨릭 주교들(bishops)이 독일의 가톨릭 주교들에게 보낸 화해의 편지(Letter of Reconciliation)에서 폴란드 주교들은 ‘우리는 독일을 용서(forgiving)함과 동시에 용서를 구한다(ask for forgiveness)’는 내용을 전달했다. 용서에 대한 두 가지 측면이었으며, 앞으로 두 국가의 가톨릭계가 이 의미를 함께 찾아보자고 다짐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용서가 가지는 의미는 서양의 종교 기독교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과거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서독 총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aw)에서 무릎을 꿇은 것이다. 이것은 서양의 기독교적 의미로 볼 때 사죄하는 것임과 동시에 전쟁의 죄를 자백(confession)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예를 동아시아에 적용해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유교적 사상(Confucianism)이 뿌리내려 있는 동아시아에서 받아들이는 화해의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스스로 이 질문을 던져보며 고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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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12월, 빌리 브란트 서독 총리가 폴란드의 바르샤바(Warsaw)에서 사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었다.
이번 포럼은 화해가 가지는 의미, 그리고 화해를 위한 유럽의 노력을 확인해 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 전 미국 대통령은 화해에 대해 이런 말을 남긴 바 있다.
“화해는 오로지 사람들의 가슴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등록일 : 2015-06-19 10:44   |  수정일 : 2015-06-1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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