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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입르포] 대한민국 대학교육의 현장 질문은 없고 점수만 좇는 곳에서 창의적 인재 나올 수 없다

11 2014 MAGAZINE
⊙ 서울대 학생, “대학에서 명강의는 사라진 지 오래”
⊙ 중앙대 학생, “질문을 하도 안 해서 질문하면 점수 준다”
⊙ 질문 없는 강의실, 교수는 학생 탓, 학생은 교수 탓
⊙ 미국 대학, 대형 강의실에서도 여기저기서 질문 쏟아져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편집자 주]
기사에 나오는 학생들의 이름과 학번, 소속 공개에 대해서는 본인들로부터 동의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해당 학생들이 아직 재학중이기에 학교 측으로부터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있어 대부분 익명으로 처리하였습니다.
연세대의 대형 강의실이다.
  라운드넥(round neck) 티셔츠, 청바지,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챙이 평평한 모자, 스냅백은 요즘 대학생들의 흔한 복장이다. 기자가 이런 복장을 하고 다시 ‘임시 대학생’이 되었다. 잠입 취재를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기자는 가방에 대학생 복장을 약 한 달 동안 따로 챙겨 다녔다. 일종의 대학생 코스프레(costume play의 줄임말)를 하게 된 이유는 우리 대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얼마나 자주 질문을 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창조경제와 창의인재가 화두다. 과연 이런 화두에 맞는 인재들을 대한민국의 교육현장은 양성하고 있을까.

기자는 미국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지인들로부터 한국 학생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다는 말을 줄곧 들어 왔다. 여기에 최근 기자가 읽은 책, ‘질문의 힘’(저자 제임스 파일)과 창의력과 관련한 도서들은 기자에게 이번 취재를 결심하게 만들었다. 이런 부류의 책들에서 하나같이 지적하는 말은 ‘질문은 창조와 창의력의 원동력’이라는 내용이다. 실제로 마크 저크버그,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아인슈타인, 에디슨, 뉴튼 등 내로라하는 발명가들과 성공한 창업가들은 ‘왜?’라는 사소한 질문에서 모든 창조를 시작했다.

의문이 창조의 출발점

뉴튼은 떨어지는 사과를 보고 ‘왜?’라는 질문을 던졌고, 그렇게 만유인력을 밝혀 낸 사람이다. 그는 전 세계인들의 역사와 과학에 한 획을 그었다.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 등도 당시 없던 물건, ‘왜 이런 것은 없을까?’라는 궁금증과 사람들의 니즈(needs)를 충족하고자 새로운 것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들이 질문을 두려워했다면, 오늘날 새로운 혁신과 창조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질문이 정답보다 중요하다. 곧 죽을 상황에 처해, 단 1시간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다면, 나는 55분을 질문을 찾는 데 할애할 것이다. 올바른 질문은 답을 찾는 데 5분도 걸리지 않게 한다.”

이렇게 그는 질문이 답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2010년 G20 기자회견 자리에서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은 한국 기자들에게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적이 있었다. 전 세계 기자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 기자들을 위해 준 특별한 기회였던 셈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절호의 찬스에 한국 기자 누구도 질문을 던지지 못했다. 오히려 중국 기자가 질문을 던졌고, 오바마 대통령은 그 중국인 기자의 질문을 보류하면서까지 한국 기자들의 질문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았다. 기자는 모름지기 두려움이 없어야 하고, 질문을 생활화하는 사람이다. 이렇게 질문을 업(業)으로 하는 사람조차 질문을 못했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을 말해 주는 것은 아닐까.

기자는 서울에 있는 대학 중 무작위로 4군데를 선정했다. 서울대, 연세대, 홍익대, 중앙대학교이다. 기자가 남자인지라 여대는 제외했다. 참석한 강의 역시, 최대한 기사의 분별력을 높이고자 30명 내외의 작은 강의에서부터 100명 내외가 참석하는 강의까지 다양하게 골랐다. 강의의 주제 역시 문과계열에서 이공계열까지 모두 참석해 보았다. 본 기사의 구성은 전반부에는 기자의 대학가 탐방, 후반부에는 학생과 교수의 인터뷰로 묶어 보았다.

대학가 탐방

수업 중 학생들은 모두 책상 위 노트를 보며 필기에 여념이 없다(사진 왼쪽). 서울대에서는 쉬는 시간에 학생들이 교수에게 달려가 질문을 했다(사진 오른쪽).

가장 처음 기자가 발을 들인 곳은 서울대의 58동 건물, 경영대학원이다. 가을의 문턱에 접어든 9월의 어느 날, 오후 1시55분, 파생상품론(Financial Derivatives)을 진행하는 강의실에 앉았다. 강의실에는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앉아 있었다.

강의실에는 빌트인 에어컨이 천장에서 가동 중이었고, 프로젝터가 칠판 가운데 내려온 캔버스에 빛을 쏘고 있었다. 강의실 앞쪽에는 3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 조교가 미리 학생들의 지정좌석을 지도해 주고 있었다. 그는 2시 정각에 교수가 들어오자 강의실에서 나갔다. 교수는 머리 염색을 하지 않고, 백발을 드러낸 6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같이 수업을 들은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교수는 해당 분야에서는 학계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인정받는 인물이라고 했다.

2시를 조금 넘겨 수업을 시작했다. 프로젝터가 보여주는 화면에서는 영문으로 된 수업자료가 하나둘 넘어가기 시작했다. 교수는 한국어로 강의를 했지만, 대부분의 용어는 영어를 사용했다. 과연 이것을 영어 수업이라고 해야 할지 한국어 수업이라고 해야 할지 난감했다. 수많은 경제용어들, hedge(헤지), collateralization(담보설정), Asset(자산)과 같은 단어들이 쉼 없이 교수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수업을 시작하고 나서 기자가 포착한 장면은 바로 학생들의 시선이었다. 학생들은 교수가 입을 열자 곧바로 교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책상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왜일까? 이들이 왜 교수의 눈을 피하는가 싶어서 기자가 유심히 보니, 그들은 교수의 말을 받아 적기 위해 책상 위 노트로 눈을 내린 것이다. 사제 간의 눈 맞춤이 없는 수업은 그렇게 계속되었다. 필기를 하다가 잠깐씩 고개를 드는 경우는 교수가 칠판에 도표를 그리거나 뭉친 목 근육을 풀 때뿐이었다. 이런 상황에 교수는 익숙한 듯이 3시간의 강의를 같은 분위기로 유지했다. 이는 상호교육이라기보다는 일방적인 교육처럼 보였다.

대답하는 학생의 기를 죽이는 교수도 문제

강의 중 학생들이 질문을 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교수가 중간에 한 학생을 지목해 특정 문제에 대해 물었다. “김××, 답을 해 보세요.” 해당 학생의 목소리에서부터 떨림이 느껴졌고, 다른 학생들에게서는 내가 걸리지 않아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감지되었다. 그 학생은 조금 생각한 뒤 입을 열었지만, 교수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건 아니죠”라고 학생의 답을 무시하듯 말하고 강의를 이어 나갔다. 그러자 이에 다른 학생이 답을 시도했다. 그 역시 결과는 비슷했다. 교수는 이내, “이 부분을 집에 가서 더 생각들을 해 보세요.” 정작 교수는 학생의 답이 틀리다면서도 정확한 답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수학처럼 정해진 답이 없는 과정에서 학생이 답한 부분도 기자의 생각에는 일리가 있어 보였다. 그러나 교수는 인상을 구기며 아니라고 했다.

이렇게 교수가 지목해서 특정 학생에게 답을 듣는 과정은 3시간의 강의 중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강의 중 기자가 목격한 학생들의 자발적인 질문은 없었다. 그리고 학생들은 쉬는 시간과 수업이 다 끝나고서야 교수에게 달려가 질문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강의를 모두 마치고 기자는 같은 수업을 들은 A군과 B군에게 강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기자와의 일문일답이다.

—좀 전 수업에서 교수가 학생에게 질문을 던진 뒤로 다른 학생들도 어느 정도 질문을 할 용의가 있어 보였는데요.

A군: “예,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자, 다른 학생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수업에서 교수가 질문을 하도록 분위기를 만든다면, 학생들이 질문할까요.

A군: “예, 제 생각에는 교수님이 그런 분위기를 조성한다면 그럴 것 같습니다.”

—교수의 역량이 중요하다는 말이군요.

A군과 B군: “예, 교수가 분위기를 잘 만들어 준다면, 학생들도 질문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질문보다는 출석 체크가 먼저

서울대에 이어 기자가 방문한 대학은 홍익대학교였다. 오전 9시30분에 기자는 홍익대 정문에 도착했다. 이번 경우는 ‘마케팅의 이해’라는 강의로 강의실에 40~50명 정도가 있었다. 서울대 강의처럼 이번에도 역시 프로젝터가 슬라이드를 향해 빛을 쏘고 있었다. 10시가 되자 30대 중반의 여교수가 들어왔고, 그가 마이크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던지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학생들도 비교적 큰소리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로 답했다. 그리고 출석을 체크하고 나자 슬라이드 자료를 보면서 강의를 진행했다.

기자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처음 교수의 인사에 답을 할 때뿐이었다. 역시나 이번에도 학생들은 수업 중 교수와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시선은 책상을 향하고 있을 뿐이었다. 수업 중 종종 교수가 학생들을 향해 질문을 할 때도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학생들은 동상처럼 묵묵부답이었다. 수업 초반에 교수가 건넨 인사에 비교적 큰 소리로 답할 때와는 대조적이었다. ‘마케팅의 이해’에 이어 찾아간 ‘인권과 국가’라는 강의에서도 같은 반응이 나왔다.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몇 분 정도 답을 기다렸지만, 아무도 답을 하지 않았다. 기자가 홍대에서 참석한 총 7시간의 수업 모두에서 학생들은 반응도 없었고 질문도 없었다.

두 강의 내용이 너무나 완벽해서 질문할 여지가 없었던 것일까. 기자가 참관하는 동안 충분히 질문의 여지가 있었다. 교수가 예로 든 특정 예시라든지, 주어가 없는 내용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호기심을 유발하는 부분은 여러차례 있었다. 질문을 통해 얼마든지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더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학생들은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일까.

수업 중 쉬는 시간이나, 수업을 마친 후 교수를 향해 달려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기자는 이들을 유심히 보았다. 그들은 질문을 위해 교수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출석 체크를 위해서였다. 그들은 수업 중 뒤늦게 수업에 합류한 학생들이었다.

다른 사람의 질문을 공유하지 않아

이번에는 연세대로 갔다. 위솔관 2층에 있는 대형 강의실로 들어갔다. 이번 강의는 ‘우주의 이해’라는 과목이었다. 기자가 서울대와 홍익대에서 들었던 강의들과는 달리 과학 과목이었다. 대형 강의실은 100명쯤은 앉을 수 있는 계단식 강의실이었다.

교수는 기자가 앞서 취재해 본 대학의 교수들보다 말투가 독특했다. 말투 하나하나를 높고 낮게 말해 기자의 흥미를 끌었다. 그래서일까. 앞서 참석했던 강의 때보다는 많은 학생이 교수와 눈을 맞추는 듯했다. 그러나 강의가 시작하고 20여 분쯤 흐르자, 이제 그마저도 익숙한 듯 다들 교수의 눈을 피했다. 이번 강의에서도 기자가 예상했듯이 질문은 없었다.

다만 마지막에, 다음 시간에 가져와야 하는 준비물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 한 학생이 질문을 했다. 사실 이 부분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준비물에 대한 확인 차원이었다. 하물며 이런 질문일지라도 큰 강의실에서 하게 될 경우, 해당 학생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럼 당연히 교수는 해당 학생의 질문을 되풀이해서 말해 주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이 내용을 듣지 못한 다른 학생들의 궁금증을 해소시켜 줄 수 있다. 또한 유사 질문을 가진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된다. 그런데 질문이라는 것이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생소하다 보니 교수는 그 질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른 학생들도 “교수님, 방금 뭐라고 질문했나요?”라는 물음조차 없었다. 이런 호기심은 당연한 것임에도 학생들은 무엇이 그리 부끄러워서 질문을 하지 않는 것일까. 질문은 학생의 본분이자 권리이다. 젊은이들이 사회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시위에 참가해 인권 운운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권리조차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

중앙대의 강의는 좀 달랐다. 기자가 일부러 초빙강사의 강의를 참관했기 때문이다. 강의의 주제는 ‘소비자 심리’였다. 초빙강사는 마케팅 업계에서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다. 업계에서 배운 실전 노하우를 학생들에게 강의했다.

참여 유도하는 질문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강사에겐 정해진 수업물이 없었다. 매 수업은 자신이 만들어 온 슬라이드를 보여주고 강의를 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나면 해당 슬라이드 내용을 학생들에게 배포하는 식이었다. 시험도 주관식으로 학생들이 해당 강의를 듣고 얼마나 깊이 있는 내용을 적어 내느냐로 판가름한다고 한다.

처음부터 교수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본 광고 중에 기억에 남는 광고가 있나요?”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손을 들고 말했다. 한 학생이 “요기요 광고요”, 다른 학생은 “간 때문이야 광고요”. 지금까지 기자가 참관한 강의 중 학생들이 이렇게 높은 참여를 보이는 강의는 보지 못했다. 물론 해당 수업에서 학생들은 교수의 물음에 답을 하는 정도로 그쳤다. 학생이 먼저 교수에게 질문을 하는 경우는 역시나 한 차례도 없었다. 그래도 학생들이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기자는 보았다. 이것은 틀을 깬 교수법이 활발한 학생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였다.

학생과 교수 인터뷰

중앙대의 강의 모습이다(사진 위). 중앙대에서는 학생들이 학생증을 벽면에 장착된 기기에 갖다 대면 출석이 처리되었다(사진 오른쪽).

중앙대에서 기자와 함께 수업을 들은 한 학생에게 물었다.

—지금 이 강의는 다른 강의와는 방식이 다른데, 학생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나요.

L군: “예, 이 강의는 보시다시피 강의실에 80명 정도 되는 학생들이 꽉 찼습니다. 다들 이런 참여하는 분위기를 좋아하는 듯합니다.”

—그럼 학생들이 다른 수업에서도 이렇게 많이 참여하나요.

L군: “저도 그렇고, 제 주변의 친구들의 경우를 볼 때, 아마 이런 열의를 보이는 수업은 이 수업뿐인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보통 질문을 자주 하나요.

L군: “학생들이 너무 질문을 안 해서 어떤 과목은 교수가 질문을 하면 참여 점수를 줍니다.”

—그럼, 질문이 많겠네요.

L군: “그렇긴 한데, 웃기는 건 질문이 호기심에서 유발된 것이 아니라 오로지 점수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손을 든 학생을 교수가 지목하면, 학생은 막상 질문이 없어서 ‘어~ 어~’거리기 일쑤입니다.”

기자는 미국의 수업 분위기가 어떤지 알아보기 위해 유학생 몇 명에게 연락을 했다.

미국 뉴욕시의 뉴욕대학교(NYU)에 재학 중인 유한규씨와 인터뷰를 하였다. 현재 그는 미국에 있어 서면으로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유한규씨와의 일문일답이다.

미국 학생들은 큰 강의실에서도 자주 질문해

—미국에서는 100명 이상 앉는 대형 강의실에서도 질문을 자주 하나요.

“예, 이곳에서는 학생들이 어디에 앉아 있든지, 강의실에 인원이 몇 명인지에 상관없이 질문을 자주 합니다.”

한국 한양대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독일인 교환학생 플로리나 하그(Florina Haag) 씨는 기자가 한국의 강의가 독일과 비교해 어땠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독일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수업 분위기는 질문이 거의 없었습니다. 독일에서는 모든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이 수업에 참여해야만 점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이 참여의 척도가 되는 것이 바로 질문입니다. 질문을 하고, 질문에 답을 해야만 참여 점수가 반영됩니다. 그리고 유치원 때부터 선생님들은 학생들이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줍니다. 따라서 대학에서 학생들은 질문을 자주 합니다. 바보스러운 질문 같아 보여도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한국에서 교환학생 교육과정을 거친 다른 독일인 친구의 예도 들어 주었다.

“제 다른 친구도 독일에서 활발히 질문을 하던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는 독일에서처럼 한국 대학 강의에서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나중에 모든 학생의 이목을 끈다는 사실에 놀랐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한국에서 겪었던 가장 기억하기 싫은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질문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답니다.”

과연 한국의 강의는 무엇이 잘못되었기에, 한 외국학생의 기억 속에 질문을 던진 순간을 한국에서 겪은 가장 나쁜 순간으로 남게 한 것일까. 한국은 근본적으로 교육 분위기를 개선하지 않으면, 미국이나 독일처럼 질문이 활발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국가정책으로 창조경제와 창의력을 강조하면서도 정작 창조가 시작되어야 할 교육현장에서 질문은 없었고, 창조는 시들어 버린 꽃이었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질문이 왜 중요한지 기자에게 말해 주었다.

“질문은 매우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학습법입니다. 왜냐하면, 질문을 하면 내가 가진 호기심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궁금해하는 부분을 내가 스스로 찾는 시간낭비를 줄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질문을 통해서 엄청난 것을 배우게 됩니다. 저는 독일에서도 한국어를 배우면서 멍청해 보이는 질문도 교수님에게 많이 물어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질문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홍익대 12학번 A씨는 이런 질문이 없는 강의형태는 고등학생 때의 영향이 크다고 기자에게 말해 주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질문을 하는 학생은 무언가 잘난 척을 하는 학생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했다. 따라서 질문을 하면 남들의 주목을 끌게 되고 과시하는 목적이 있다는 생각을 다른 학생들로부터 받는다고 했다. 이런 고등학교 때의 과정이 대학에서도 지속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방통행식 수업에 익숙해, 학생은 교수 탓

기자는 서울대 재학생들에게 물어보았다. 경영대 건물 내에 토의를 위해서 만들어진 방들이 밀집한 곳 중 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방안에는 4명의 남학생들이 있었다. 이들은 모두 서울대 경영학과 11학번으로 친구 사이라고 했다.

—질문을 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여러분들이 강의 중 질문을 하거나 목격한 적이 있나요.

F군: “일단 질문을 하면, 학생들은 수업이 길어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리고 특히 수업 막바지에 질문을 하면 다 쳐다보게 되고, 그 학생 때문에 수업이 길어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H군: “저 같은 경우는 초·중·고를 모두 해외에서 다녔습니다. 이미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져 있다시피 실제로 해외에서는 상호 토의하는 수업을 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학생 대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을 해서 창의적인 질문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분위기입니다.

이런 수업을 인터랙티브(interactive) 수업이라고 합니다. 이 때문에 저도 해외에서 했듯이 한국에서도 (질문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저같이 (질문을) 안 하는 겁니다. 그래서 괜히 했다가는 튀어 보일까 봐 못하겠더라고요.”

—한국 학생들은 그럼 의문이 생기면 이를 어떻게 해결하나요.

G군: “보통은 수업 끝나고 찾아가서 물어보는 경우가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업시간에 공개적인 질문을 하면 학생들끼리 득이 되지 않습니까. 일례로, 한 학생이 던진 질문을 듣고, ‘아 저 부분은 나도 생각 못해 본 건데, 아 저럴 수도 있겠구나’ 하면서 남의 질문을 통해 배우는 시너지효과는 그럼 현재 상태에서는 없겠네요.

H군: “그렇죠, 그런 건 없는 거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E군: “그냥 교수님이 가르쳐주는 것만 잘 듣고 가자 그런 분위기입니다.”

F군: “전부 시험에 나올 만한 부분만 생각하고 그러다 보니 교수님이 중요하다는 내용에만 치중하게 되는 겁니다.”

—그럼 해외의 사례와 같이 분임식 토의처럼 서로 짝을 지어 묻고 답하면서 모든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는 강의는 없나요.

F군: “정말 작은 규모의 수업, 예를 들어 한 6명 정도 되는 수업에서는 그런 방식으로 진행을 합니다. 그런데 한 30명만 넘어가도 그런 토의식 수업을 하지 않아요.”

이 답을 듣고 해외에서 공부한 바 있는 H군에게만 기자가 물었다.

—근데 해외에서는 30명이 넘는 강의라도 한 5~6명씩 나눠서 토의식으로 수업을 하지 않나요.

H군: “예, 맞아요. 외국에서는 그렇게 그룹을 나눠서도 자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아직 한 번도 보지 못했습니다.”

서울대에서 만난 또 다른 학생 A군은 최근 대학가에서 명강의가 사라졌다며,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과거에는 재미있는 과목이나 강의를 찾아다녔는데, 이제는 점수 잘 주는 교수와 점수 받기 쉬운 강의만 찾게 된다고 했다.

점수만 좇는 학생이 문제, 교수는 학생 탓

질문 없는 교실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보기 위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에서 한국사를 가르치는 손철배 교수를 만났다. 그는 외국인 교환학생이나 재미교포 학생들을 주로 가르친다. 과거에는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외국 학생과 한국 학생 중 누가 더 질문을 많이 하나요.

“물론 저는 외국 학생과 한국 학생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외국 학생들 중에서도 유독 질문에 더 열의를 가지는 학생이 있습니다. 다만 문화적으로 한국 학생들에 비해 외국 학생들의 사고 자체가 개방적이고 더 (수업에) 참여하려는 의지가 있어 보입니다.”

—그럼 한국 학생들이 질문을 안 하는 이유가 있나요.

“학생들 자체가 점수만 신경쓰다 보니까, 시험에 나오는 것 위주로만 찾습니다. 그러니 그냥 교수의 말을 받아 적기만 합니다. 그리고 아마도 한국 학생들은 교수의 주장에 반대되는 의견을 낼 용의가 없어 보입니다. 설령 그런 주장을 했다면, 학생 입장에서는 자신의 점수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에 따르면 학생들이 점수만 좇다 보니 질문이 없다고 했다. 이에 기자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교수법이 바뀌면 학생들 더 질문할 것”

—학생들은 교수법이 바뀌면 더 질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나요.

“저는 현재 토론식 수업방식을 일부 적용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학생과 함께 질문과 답을 주고받고 있습니다. 한데, 이런 교수법이 보편화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이런 방식이 보편화된다면, 질문이 더 나올 여지가 있어 보입니다. 저를 포함한 많은 교수가 학생들의 참여를 만들어 주는 교수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런 논의를 하고는 있으나 더 발전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부분에 저도 사명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자는 과거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만약 여러분과 같은 학생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내가 있을 필요가 없다. 많이 물어보고 배워라.” 이런 말을 하는 선생님이 아직 교육현장에 남아 있기는 한 것일까. 교육현장을 기자가 취재하면서 질문이 사라진 대학에서 정녕 ‘모르는 것은 죄’였다. 죄인이 되어버린 학생들을 누가 가르쳐 줄 것인가. 호기심을 잃은 학생들로부터 창의인재의 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통치론을 남긴 영국의 철학자, 존 로크(John Locke)의 명언으로 기사를 마친다. “한 남자의 주장보다 한 어린이가 내뱉는 예상치 못한 질문으로부터 우리는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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