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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특집 인터뷰] 엔드류 클리프 주한영국대사관의 무관

“한국전쟁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자 힘”

[6.25특집 인터뷰] 엔드류 클리프 주한영국대사관의 무관

약력
엔드류 클리프 (Andrew Cliffe) 육군준장

영국군사과학대학 토목공학과 학사
영국참모대학 국방기술 및 지휘관 참모과정 석사
영국국방과학평가연구소(DERA) 급조폭발물 대응기술분야 연구 주도

제25 영국왕실공병연대 지휘관
제8 영국왕실공병여단 지휘관

해외근무경력(분쟁국)

아프가니스탄
동티모르
모잠비크
시에라리온 등 다수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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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가 진행된 찰스 헤이 (Charles Hay) 영국대사의 공관, 건물은 1890년에 지어졌다. /사진 김동연
지난 4월 말윌리엄 스피크맨(William Speakman) 영국인 참전용사가 자신의 한국전 무공훈장(武功勳章), 빅토리아 크로스(Victoria Cross, 가장 높은 등급의 무공훈장)를 한국정부에 기증하면서 화제를 모았다88세의 노병은 빅토리아 크로스를 비롯한 10개의 훈장을 한국에 기증함으로써 자신이 싸운 한국전쟁의 의미를 한국인들과 그들의 후손들이 되새겨주기를 바란다는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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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 장군과 한국전쟁 기념비의 축소모형, 이 모형은 영국에서 주한영국대사관을 통해 한국정부에 기증할 예정이다./사진 김동연
한국전쟁 65주년을 하루 앞둔 24영국대사관에서 대사관의 무관(武官, Defense Attache’)인 엔드류 클리프(Andrew Cliffe) 장군(육군 준장)을 만난 것도 이 때문이다그는 장군 중에서도 토목공학(Civil Engineering) 전공자로서 군사기술분야의 식견이 남다르다그의 이력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다. 1990년 독일 베를린에 파견되면서 베를린 장벽 붕괴 직후 독일의 실상을 직접 목격했다.
2001년 미국의 9/11 테러발생 직후에는 영국 국방부의 군사작전부에서 국방위기관리센터를 지휘했으며아프가니스탄동티모르모잠비크 등 다양한 분쟁지역에서 전장(戰場)경험을 쌓았다특히 영국국방평가연구소(DERA) 산하 대테러 급조폭발물 대응(Counter IED)에 관한 연구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클리프 장군과 함께 영국이 바라보는 한국전쟁의 의미 그리고 대테러의 의미 등 다양한 국방분야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인터뷰는 약 125년의 역사를 간직한 영국대사관의 공관(公館) 1층에서 진행되었다다음은 클리프 장군과의 일문일답이다.
영국도 미국처럼 북한의 도발 억제가 주안점
영국 대사관의 무관(武官, Defense Attache’)이자 육군장군으로서 현재 맡고 있는 업무를 <조선pub>의 독자들에게 설명해달라.
일단 무관(武官),이라는 직책은 기본적으로 군사적인 전문성을 발휘하는 직책이다그렇다보니 영국의 군사적 분야를 한국의 국방부 관계자들과 협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현재 영국대사관의 무관은 1명 배정되어 있으며나를 보좌하는 팀(보좌관과 연구원프로그래머 등)이 국방분야 업무를 추진 중이다.
나의 소속은 육군이지만 한국의 육군은 물론이고 해군 그리고 공군 지휘관들과 군사적인 공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가장 대표적인 예로는 영국에서 한국으로 파견 온 국방부 참모들을 들 수 있다역시나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국방부의 참모들이 영국을 방문하여 상호간의 정보공유를 하고 있다.
여기에는 한국과 영국간의 합동훈련(joint training)에서부터 이론교육까지 다양한 국방지식과 경험을 함께 공유하는 것이다이 과정을 우리는 주제전문가(主題專門家)의 교환교육(Subject Matter Expert Exchange)”이라고 칭하며 양국의 전문가들이 이러한 유대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한미연합사(CFC)와도 업무를 공조하고 있나.
그렇다연합사의 미군과도 업무를 하고 있다한국의 경우는 주한미군이 있는 국가이며 휴전협정이 체결되어 있는 국가이다이 때문에 영국도 유엔(UN)의 일부이자 미국과의 동맹국으로서 주둔중인 미군과도 협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과의 공조체제가 전시에는 어떻게 바뀌나.
미군과 마찬가지로 우리 영국의 목적도 기본적으로는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것(deters the agression from the North Korea)‘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따라서 평시와 전시에 대한 위기를 관리하는 구조(crisis management mechanism)로 운영되는 것이다불과 몇 년 전에 북한은 여러 형태의 도발을 저질렀다모든 도발상황이 같을 수는 없지만 영국정부의 판단 아래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지원을 한미연합사에 제공하게 된다이런 지원의 종류를 사전에 정할 수는 없다도발 및 상황에 맞는 대처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교적 지원유엔(UN)을 통한 간접지원혹은 직접 지원등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 있다일례로 천안함 폭침때 영국은 어뢰(torpedo, 魚雷)분석 전문가를 한국에 파견한 바 있다당시 한국 그리고 미국의 국방전문가들과 함께 이 폭침을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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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중인 클리프 장군/사진 김동연
당시 이런 영국의 전문가 파견이 언론의 관심을 많이 끌지 못한 것 같다.
영국의 이러한 지원은 언론에 노출되기 위한 것은 아니다더군다나 한국의 경우는 너무 명백한 적국(敵國)인 북한을 마주하고 있다이런 마당에 우리의 지원에는 진정성(genuine)이 있는 행동이었다한국은 우리의 우방국(友邦國, ally)이 아니던가또 경제적으로 한국과 영국은 중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문제가 되었던 때, 한국정부는 영국에 에볼라해외긴급구호대를 파견한 바 있다이에 영국정부와 주한영국대사관은 한국의 지원에 감사를 표한다이렇듯 한국과 영국은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전쟁 참전은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 후회없는 선택 
내일이면 한국전쟁 65주년이다한국전쟁이 영국사회에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우리가 있는 이 공관은 1890년에 지어진 건물이다한국과 영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약 130년이 넘는 긴밀한 관계를 구축해왔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다당시 남한을 침략한 북한을 보고 가장 처음 파견된 해외병력중 하나가 바로 영국의 군대였다일본과 홍콩에 있던 영국군대들이 곧장 한국으로 파견되었다당시 우리에게 중요한 우방국인 한국을 위해서 참전한 것이다그리고 전쟁에 함께 참여한 다른 연합국인 미국캐나다호주 등과 함께 한국을 수호하기 위해서 전장에 뛰어들었다사실 제2차 세계대전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던 상황이었음에도 당시 영국정부에게 한국전쟁은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다 한국전 발생 초기에 곧장 병력을 파견한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그런 결정을 내린 배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영국은 역사적으로 넓은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우리가 세계를 통해 배운 것은 상호의존성(inerdependent)이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세계화(globalization)의 일환이다그런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영국이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한국의 자유무역과 자유가 공격받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또 영국은 UN의 상임이사국으로서 평화를 위해 싸워야 할 충분한 명분이 있었으며한국전쟁을 통해 우리의 리더십을 보여주고자 했다.”
당시 영국의 한국전 참전을 두고 영국사회에서 후회 한다거나 참전을 반대하지는 않았나.
 
희생이 있었지만 충분히 가치 있는 행동이었다왜냐하면 우리는 한국이 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는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오늘날 한국의 경제력은 세계 10위권이 아닌가지금 돌이켜본다면 우리가 싸운 한국전쟁은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한국과 영국은 거리상으로는 상당히 멀리 있지만 공통점도 많다예를 들어 대통령 선거 때 나오는 선거기록이나 결과 등에서도 유사점을 보인다한마디로 민주국가인 한국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민주국가인 영국을 움직이는 원동력과 같다는 뜻이다영국은 우리가 지켜내고자 했던 자유를 생각한다면 분명 한국전은 후회 없는 전쟁이었다.“
영국 BBC는 한국전쟁을 영국의 잊혀진 전쟁(Britain’s forgotten war)이라고 묘사한 바 있다해당 기사에 따르면 영국은 당시 한국전에 약 9만 명의 군인을 보냈음에도 수십여 년이 지난 지금 영국 사회에서 한국전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고 한국전에 참전했던 영국 참전용사들의 입을 통해 내용을 전했다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일단 그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는 표현을 들어본 바 있으나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가장 최근 영국사회에서 나온 사건 하나를 예로 들겠다영국 국방부 건물 앞이자런던의 템즈강이 보이는 곳에 한국전쟁 기념 동상이 제작되었다이런 예만 보아도 한국전쟁은 절대로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잊혀진 전쟁이라는 표현만 보자면 정말 영국사회로부터 잊혀졌는가를 자문해볼 수 있다영국이 정말 한국전쟁을 잊혀질 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면 왜 약 9만에 달하는 병력을 한국에 보냈겠는가영국이 해군 함정항공병력해병대 등을 파견하지 않았나.
한국전이 발생하기 이전에 영국이 겪은 두 번의 세계대전은 영국의 모든 것들을 파괴했다이 때문에 영국은 경제적으로나 산업적으로나 모든 부분이 전쟁으로 인해 지쳐있었다사람들은 평화가 오길 바랐고다시 발전하길 바랐다.
단지 이런 점이 영국에 직접적인 타격이 있었던 두 번의 세계대전에 비하면 영국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타격이 없었기에 그 정도가 덜했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잊혀진 전쟁이라고 볼 수는 없다잊혀진 전쟁이라는 표현안에는 분명 잊혀져서는 안될 모두가 기억해야할 전쟁이라는 강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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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드류 클리프 장군 /사진 김동연
2차세계대전에 적용했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한국전쟁에서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시행되었는데 이를 역사적으로 비교하자면 뭐라고 말하고 싶나.
인천상륙작전은 내가 군 지휘관으로서 보자면 상당한 리스크를 감수해야하는 대담한 행동이었다그런데 전쟁이 그런 것이다어떤 상황에서는 대담함을 요하는 결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그런 대담함 덕분에 전쟁의 분위기와 상황을 완전히 뒤집을수 있었던 것이다당시 영국은 상륙에 필요한 함정과 해병 병력을 지원했다당시 영국군은 서울까지 정찰대를 보내 적진의 상황을 파악하기도 했다영국군이 다른 연합군과 함께 세운 중요한 업적으로는 김포공항을 탈환했다.
노르망디의 경우도 전세를 뒤집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인천상륙작전과 유사점이 많다다만 차이가 있다면 적들의 태도였다노르망디의 경우 독일군은 어느정도 이 상륙작전을 예상했다는 것이다독일이 예상한 도시는 프랑스의 항구도시인 칼레(Calais)였다당시 이 위치가 영국군이 이동하기에 좋은 거리에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우리는 가까운 거리가 아닌 노르망디를 택했다그런데 인천의 경우는 북한군이 이 공격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즉 전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노르망디의 독일군과 북한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장군은 제2차세계대전 이후 독일을 나누었던 베를린 장벽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다현재 분단된 한반도를 보면 어떤 점을 말해주고 싶은가.
“맞다독일과 한반도는 모두 분단되었다는 점에서는 같다그러나 독일의 상황을 보면 현재 한국이 똑같다고는 볼 수 없다아마도 독일이 겪었던 분단의 교훈 중 일부가 한반도에도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독일은 하나의 장벽만으로 그 경계를 갈랐기에 현재 한반도의 상황과는 다르다베를린 장벽의 붕괴 전부터 동독과 서독의 교류는 암암리에 진행될 수 있었다아마도 이런 교류가 독일이 하나의 통독으로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장벽이 붕괴전에는 두 독일안에는 장벽 근처에 오면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가야 하는 회랑(回廊)지역이 있었다이런 회랑지역은 지상뿐 아니라 공중에도 있었는데장벽이 붕괴되자 한순간에 이런 제약들이 사라졌다사람들은 이런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어느 날 갑자기 독일이 통일을 하다니말도 안돼라는 말들을 하곤 했다서독의 사람들이 동독에 처음 들어갔을 때 더 어두운 도로와 광고표지판이 별로 없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게 되었다.
군인의 관점에서 보자면동독은 과거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이 그대로 보존되어있다예를 들어 나폴레옹이 전투를 벌였던 도시들에 가보면 거의 그대로 그 현장이 있다는 것이다마을이 있던 곳전투를 벌였던 곳 등 말이다즉 동독은 도시의 발전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지는 못했다는 것이다이런 부분이 역사학자들에게도 매우 좋은 장소를 제공하고 있다그런데 요즘 내가 독일을 가보면 서독과 동독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테러는 일종의 증상이기에 한번에 제거할 수 없는 문제다 
이번에는 주제를 바꿔서 대테러의 의미 등에 대해 물어보았다북한은 남한을 향한 도발 및 각종 테러(KAL기 폭파사건아웅산 테러)를 저지른 바 있다.
장군의 이력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대테러분야에서 오랜기간 업무를 추진했다는 점이다특히 급조폭발물의 대응(Counter IED) 기술개발에도 관여했는데 설명해줄수 있나.
“기술적인 부분은 기밀사항이라 자세한 내용은 말할 수 없다일단 급조폭발물(IED)은 매우 위협적인 무기이다이런 폭발물은 군 병력의 이동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없게 만든다즉 병력이동 자체에 제약을 받는 것이다이동이 제약적이라는 말은 곧 작전도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급조폭발물은 내가 근무한바 있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이런 급조폭발물을 거의 최초로 사용한 탈레반(Taliban, 테러집단)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급조폭발물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군은 다각도로 변모해야한다군인 개개인의 훈련은 물론이고 정보수집 그리고 나아가 군 지휘관의 지휘능동성(commanding flexibility)까지도 변모해야하는 것이다이와 동시에 과거 경험과 기록을 통해서도 배워야 한다왜냐하면 이런 위협(threat)이 계속 진화하기 때문이다진화하는 위협에 맞게 대응도 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이런 변화는 이런 대테러상황뿐아니라 군 전체적으로도 중요한 것이다미래의 위협까지도 예상하고 변해야 한다특히 급조폭발물은 비교적 현대전에서 등장한 위협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와 개발을 요한다이런 개발과 훈련을 통해서 분명 이런 위협은 무력화될 수 있다.”
대테러(counter-terrorism)를 정의를 한다면?
“일단 테러라고 함은 민간인을 상대로 상당히 과격한 공격행위를 하는 것을 말한다여기에는 각 상황에 따라 다르게 부여된 목적이 있다이 때문에 나는 테러는 어떠한 것에 대한 원인(cause)이 아니라 일종의 증상(symptom)이라고 본다이 때문에 군대가 이 테러의 원인을 제거할 수는 없다단지 이 테러라는 증상에 제동(tackle)을 걸 수있을 뿐이다실질적인 테러의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각국의 정부연구기관 등이 다각도의 정책과 국제적인 협력을 통해서 이 테러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어떤 전문가가 대테러를 논한다면서 테러는 이렇게 막으면 된다라는 식으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혹 누군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관점이다테러는 증상이자 징후이기 때문에 모든 기관이 힘을 합쳐서 그 증상을 분석하고 원인을 찾는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이다.”
 
영국 학교에서 시행하는 군사교육은 학생들의 애국심과 협동심 길러내
 
영국의 학교에서는 군사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아는데 그 효과가 궁금하다.
일부 학교에서 군사교육과정이 적용된다특히 간부양성학교(cadet)에서 많이 사용된다내 아들도 이런 내용을 배웠고 그는 그런 가르침에 만족하고 있다내 아들이 12살때부터 약 5년간 이런 군대에 대한 내용을 교육받았다. 이는 훌륭한 훈육법이다영국은 비교적 이런 군대식 훈육교육이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각계 정부 기관 등에서 지원을 받아서 진행되며 지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만 시행된다이런 교과과정은 학생들에게 내가 만약 육군이라면해군이라면공군이라면 어떨까’ 하는 호기심을 해소시켜주는 방안이다.
이런 학생들이 해당 교육을 통해서 군을 더 이해함은 물론 애국심을 길러주고 있다또 실질적인 팀워크의 중요성리더십조직생활 등도 학생 때부터 경험함으로서 사회에서도 유용하게 활용되기도 한다.“
여학생들도 지원가능한가.
“물론이다남녀 모두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자원하는 학생들에 한해서만 시행한다보통 방과후 과정으로 주중이나 주말에 1~2회정도 교육하고 있다이 과정에는 군사전문가뿐만아니라 민간전문가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내 아들은 지금 19살인데 어릴적 이 경험이 너무 재미있어서 이번 여름에 다시 가서 배우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전쟁을 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뭐라고 하겠나.
“사실 이 질문은 좀 어렵다이 때문에 나는 먼저 한국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보았다한국은 한국전쟁이후 많이 변했다경제적으로나 국제적으로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으며 해외에 파병을 하는 등 평화유지에도 힘쓰고 있다이런 점이 무엇을 시사하는가 잘 생각해보라한국은 한국전쟁을 통해 붕괴(destroy)된 것이 아니라 비약적인 성장(developed)을 이룩해냈다. 즉 한국전쟁은 한국을 변화시킨 기폭제가 되었다고 본다그런 면에서 한국전쟁은 오늘의 한국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자 힘이라고 생각한다그리고 아직까지 하나의 단어로 정의되지 않는 순간’(defining moment)이며앞으로 정의되어야 할 전쟁이라고 생각한다.”

등록일 : 2015-06-24 18:39   |  수정일 : 2015-06-25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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