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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담화’를 남긴 고노 요헤이의 아들 고노 다로 일본 중의원 “고노 담화, 바뀐 것 없다”

08 2014 MAGAZINE

⊙ “고노 다로, 원전정책을 제외하고는 아베 정권을 지지한다”
⊙ “나도 나의 아버지(고노 요헤이)와 함께 야스쿠니에 참배 간다”
⊙ “한국은 원전 재처리 발전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고노 다로(河野太郞), 그는 일본의 자유민주당 6선 중의원이다. 1996년 33세의 나이로 의원이 된 이후, 한 번도 낙선하지 않았다. 내리 6선이다. 그의 아버지는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이다. 고노 요헤이는 관방장관으로 재직 당시 1993년, 한국을 방문해 ‘위안부 관계 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 담화’, 이른바 ‘고노 담화’를 남긴 사람으로 우리의 기억에 아직도 선명하다. 당시 담화의 골자는 일본이 위안부 강제 모집 및 위안소 운영 등을 주도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고노 다로 중의원은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1일까지 서울에서 열린 아태에너지서밋(2014 Pacific Energy Summit·PES)에 패널로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전인 1997년부터 일본의 원자력 정책에 관해 문제제기를 해온 인물이다. 원전을 반대하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인터뷰에 앞서 그는 ‘고노 담화’를 비롯한 정치적인 문제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았다. 하지만 인터뷰 내내 기자는 고노 담화를 비롯해 최근 민감한 한일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질 타이밍을 노렸다.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질문부터 시작해 고노 담화와 한일관계에 대한 민감한 질문까지 던졌다. 일본과 유사한 한국의 원전이 나아갈 길과 일본의 우경화 상황, 악화된 한일관계의 개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일본의 원자력 정책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해왔는데 그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요.

“일본의 원자력 정책은 핵연료주기(nuclear fuel cycle)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우리(일본)는 우라늄과 석유가 없습니다. 우라늄을 태우는 것은 마치 석유를 태우는 것처럼 연료로 활용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라늄 원자력 발전을 하고 나면, 사용 후 핵연료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것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얻어낼 것이며, 그 플루토늄을 다시 몬주 고속증식로(fast breeder reactor)를 이용해 발전에 사용할 것이라고 계획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우라늄 발전설비에서 전력을 생산하는 동시에, 플루토늄을 사용한 고속증식로에서도 전력을 생산함으로써 배의 효과를 내게 됩니다.

이것이 1967년 일본에서 나왔던 최초의 원자력 발전 계획입니다. 당시 일본 정부는 20년 뒤에 ‘우리는 고속증식로를 완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일본 정부는 2050년 전까지는 고속증식로를 완성할 수 없다고 하고 있습니다(실질적인 고속증식로의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의미).”

—2050년이요? 2015년이 아니고요?(영어의 fifty와 fifteen이 발음이 비슷해 기자는 재차 2050년인지를 확인해 물었다.)

“예, 2050년입니다. (그도 일본 정부의 계획이 황당하다는 듯이 2050년을 말하며 웃었다.) 이 말은 곧, 2050년이 되기 전까지는 우리에게는 고속증식로가 없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고속증식로 완공을 대비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온 사용 후 핵연료를 영국과 프랑스에 보내서 재처리(reprocess)하여 플루토늄으로 만들어왔습니다. 현재까지 일본이 가지고 있는 플루토늄의 양은 45톤입니다. 이렇게 많은 양의 플루토늄을 어떻게 할 것인가요? 이것을 사용할 고속증식로도 없습니다. 이것은 미국의 핵무기 저장량(nuclear arsenal)보다도 많은 양입니다. 그리고 재처리 중에 나오는 고준위핵폐기물(高準位放射性廢棄物)도 영국과 프랑스에서 함께 돌아옵니다. 이 폐기물의 방사능이 없어지려면 10만 년이 걸립니다. 이런 위험한 물질을 일본에서는 어디에 둘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기 전까지 일본에는 54개의 원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년 이 발전소들에서 1000톤의 사용 후 핵연료를 배출했습니다. 이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일본은 사용 후 핵연료 저장소의 남은 공간이 6000톤 분량뿐이었습니다. 즉 이것은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없었어도, 원전은 6년 가동 후 모두 멈춰야 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기 전부터 일본의 원자력 발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입니다.”

원전 없어도 일본의 전력수급엔 문제없어

2005년, 당시 자민당의 간사장이었던 아베 신조가 야스쿠니 신사를 방문하고 있다.

—아베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직후에 일본은 더 이상 원자력 발전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공식적으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는 말을 바꿔서 원자력 발전을 재가동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는데요, 이런 아베 정부의 말 바꾸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사실 원자력 발전에 대한 책임은 (제가 속한) 자유민주당(LDP)에 있습니다. 물론 현재 아베 정부의 원자력 정책에 저희가 반대하는 입장입니다만, 사실 원자력에 대한 책임은 우리 당에 있습니다. 우리는 원전에 대한 책임과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일본의 자민당은 과거 원자력 발전에 대한 의존 정책을 펼쳐왔다.

—지금 말하는 잘못을 인정했다는 것은 의원 자신을 말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당에 소속된 모든 의원을 말하나요.

“우리는 정기적으로 하는 회의가 있습니다. 이 회의 말미에 우리 모두는 우리의 잘못을 인정했습니다. 과거 우리가 주장했던 원전 의존 정책은 잘못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은 이러한 의존 정책을 하면 안 된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원전을 관리 감독하는 기관을 독립기관으로 할 것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의 원전을 검사하는 기관은 원자력 발전을 운영하는 기관과 같은 소속이었습니다. 이제 원전에 대한 의존을 탈피하자는 것이 우리의 공식 입장입니다.”

—당내 다수의 입장인가요. 아니면 일부 반대세력도 있나요.

“다수가 아닌 모두(everyone)의 공통된 입장입니다. 그런데 지난 4월 아베 정부가 밝힌 원전에 대한 의존 중요성은 자민당 주장과는 반대입니다. 그는 원전은 중요하다고 그의 에너지기본계획에서 강조했습니다. 중요하다고요? (그는 아베 총리의 발언을 회상하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여태껏 원전 의존도를 줄이자고 했는데, 중요하다니요. 그리고 그가 밝힌 에너지기본계획의 내용을 보면 명시되어야 할 세부사항은 모두 빠져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구두로 말했던 ‘더 이상의 원전 건설은 없다’와 같은 부분은 빠져 있습니다. 몇 개의 원전을 더 건설할 것인지 어떻게 몇 년도까지 재생에너지 설비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에 대한 목표치도 없습니다.”

—많은 원전이 중단된다면 일본의 전력 공급에 차질이 생기지 않을까요. 이미 후쿠시마 사고 이후 몇 개의 원전이 가동을 중단했습니다. 당시 이것으로 인해 도쿄를 비롯한 대도시 전력 수급에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이미 도쿄에서는 블랙아웃(black-out·정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정전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히 계획에 의한 정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전을 한 이유는 사람들에게 원전의 중요성을 일깨우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원전이 없으면 전력 수급에 차질이 생긴다는 느낌을 준 것이지요. 당시 중단된 원전이 없이도 일본에는 충분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 원전은 모두 가동이 중지된 상태입니다. 이번 여름은 더울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정부는 올여름을 대비해 충분한 전력이 확보되어 있다고 예보했습니다. 즉 전력의 양(quantity)만을 생각한다면 원전이 없어도 됩니다. 전력 수급에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이번 여름에 계획된 정전은 없습니다. 결국 일본은 전력 수급을 위해서 원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다만, 원유 공급과 천연가스 공급에 문제가 생기거나 공급이 끊긴다면 예비 차원에서 원전이 있으면 좋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본의 화석연료 의존도는 1970년대 오일쇼크 때보다도 더 높습니다.

원전 자체적으로는 문제점이 많습니다. 원전의 사업구조는 잘못되어 있습니다. 원전사고가 발생했을 경우나 원전을 중단했을 때 들어가는 비용이 벌어들인 수익을 초과합니다. 이 때문에 저는 그동안 원전의 사업구조는 사고를 대비한 형태로 구상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생각에 원전을 운영하려면 벌어들인 수익을 가지고 펀드를 구성해 유사시 투입할 금전적인 준비를 해두어야 합니다. 현재 원전은 벌어들인 수익으로 사고시에 그 비용의 처리가 되지 않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예산을 끌어오는 구조입니다.”

“고노 담화는 당시 일본 정부의 입장”

—한국도 일본처럼 원전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많습니다. 또한 설계시한을 넘긴 고리원전과 같은 발전소를 운영 중입니다. 원전 운영의 안전성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독일이 유일하게 원전 의존도 ‘제로화’를 실질적으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런 형태로 가는 것이 옳은가요.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원전에 대해 지역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한국에도 피해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역으로 만약에 한국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한다면 일본의 서쪽 지역도 방사선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한일 모두가 안전에 대한 토의를 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 도태 시기의 원전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지역주민들에게 그 사실을 정확히 알리고 그 안전성을 토대로 설득해야 할 것입니다. 제가 한국의 원자력 발전에서 걱정하는 부분은 바로 재처리 혹은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핵연료를 연료로 재사용하도록 처리하는 것) 부분입니다. 제 생각으로는 한국은 이 핵연료들의 재처리 발전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일본에서 보지 않았습니까. 우리도 여기서 이득을 보지 못했습니다. 수지타산(收支打算)이 맞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본 북쪽에 있는 재처리 발전소를 운영하면서 수지타산이 맞는 행세를 해왔습니다. 단지 이것은 사용 후 핵연료를 재처리 발전소로 옮기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 이를 통해서 일본은 이득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도리어 재처리 발전을 한다면 돈을 잃을 것입니다. 경제적인 손해뿐 아니라 한반도 전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습니다.

남아공도 한국처럼 이런 파이로프로세싱을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한국과 남아공은 시작을 하지 않는 것이 좋고, 일본은 당장에라도 재처리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플루토늄 도미노를 막아야 합니다.”

기자가 보니 고노 다로 의원은 일본의 원전 문제에 심취해 답변을 하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기자는 이를 아베 정권의 우경화를 질문할 찬스라고 생각했다.

—아베 정권이 원전 의존도를 줄이자고 했다가 다시 원전은 중요하다며 재사용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듯 아베 정권의 말 바꾸기는 단연 에너지 부분만은 아닌 듯합니다. 아베 정권은 고노 담화의 내용과는 달리 전쟁 직후 일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요.

고노 다로 의원은 기자가 질문을 마치기도 전에 자르며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아베 내각은 무라야마 담화, 가토 담화, 고노 담화 모두를 인정하고 따르겠다고 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의 위안부 폄하 발언과 일본의 군사 재무장, 우경화 행보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들은 고노 다로 의원의 부친이신 고노 요헤이의 담화와는 다소 다른 면이 있습니다.

“당시 고노 담화는 제 아버지이신 고노 요헤이 개인의 발언이 아닙니다. 이는 당시 일본의 미야자와 정부의 공식 표명입니다. 이런 일본 정부의 공식 표명은 현 아베 정부에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베 정부의 기조는 이전의 일본과 비교해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습니다.”

그는 아베 정부도 기존의 고노 담화를 인정하고 있다며 기자의 질문을 원천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기자는 고노 다로 의원의 답변을 인정하지 않고 다시 질문을 했다.

—한데, 아베 정부는 헌법을 바꾸면서까지 자위대의 재무장과 집단적 자위권 부분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아베 총리는 헌법의 해석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우리나라(일본)는 자국을 지킬 권리가 있으며 이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자위권(自衛權)에는 개별적 자위권과 집단적 자위권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집단적 자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집단적 자위권의 발효권한은 금지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법에 대한 해석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우리에게 집단적 자위 권리가 있다면 이를 발효할 권한도 있다는 게 아베 정부의 해석입니다.”

“(嫌韓 데모하는 사람들은) 인종우월주의자”

기자는 고노 다로 의원의 ‘현재 아베 정권도 고노 담화의 기조를 존중하며 지금도 유지한다’는 발언에 대해 동의할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아베 정권의 우경화 행태에 대해 물었다. 왜 집단적 자위권의 해석을 바꾸려고 하는지 그 원인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대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에도 불구하고 현재 빚어지는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을 바꾸는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베 정권도 고노 담화를 존중하고 지지합니다. (기존 고노 담화 내용과) 아무것도 바뀐 것은 없습니다.”

—바뀌지 않았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바뀐 것이 없으니 바뀐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럼 바뀌지 않은 아베 정권이 헌법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한 해석을 달리한 그 부분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일본 정부가 이렇게 ‘해석 개헌’을 한 적이 없잖습니까.

“헌법의 해석을 달리하는 것은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의 기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사안입니다.”

고노 다로 의원은 아베 정권의 우경화와 고노 담화의 인정은 서로 뜻이 다르다며 선을 그었다. 그는 기자의 질문의 요지를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베 정부의 우경화’ 실태는 인정하기 싫은 듯했다.

—고노 담화와 헌법 재해석은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이군요. 그럼 제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도쿄 시장이었나요? 그는 위안부를 폄하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이런 일본 정부의 태도는 또 무엇입니까.

“예,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사람이 오사카 시장인 것 같네요. 그는 정부의 일원이 아닙니다. 그는 자유민주당 소속이 아닙니다. 우리 자유민주당은 그의 주장에 반대합니다. 공식적인 일본의 입장은 앞서 말했듯이 바뀐 것이 없습니다. 내각은 전부 기존의 고노 담화를 존중하고 이를 따르고 있습니다.”

고노 다로 의원은 기자의 계속된 질문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기자는 인터뷰가 있던 6월 30일 일본에서 있었던 사건 하나에 대해서 물었다. 당시 도쿄시내에서 중년의 남성이 아베 정부의 우경화에 반대하여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붓고 분신을 했다.

기자는 이를 근거로 고노 다로 의원에게 ‘아베 정부의 우경화는 일본 국민들도 의식하고 있으며 이를 반대한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는데, 그는 웃으면서 ‘분신을 한 사람에게 그 이유를 직접 물어보는 것이 좋겠다’고 넘겼다. 그는 일본 정부의 우경화를 아예 없는 사실처럼 보이려고 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분신을 한 사람과 달리 이번에는 화제를 돌려 묻겠습니다. 일본 내 우익단체들의 데모는 어떻습니까. 이들은 아베 정권을 지지하며 일본의 재무장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혐한류와 같은 데모도 하는데요.

“그 사람들은 우익단체(right winger)가 아닙니다. 그들은 우월 인종주의자(xenophobia·일종의 인종차별주의자)들입니다. 그들과 우익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그들의 데모를 우익의 데모로 보시면 안 됩니다. 진정한 우익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럼 진정한 우익은 누구인가요.

“일단 해당 데모에 가담한 자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로 한국인이나 중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베 정부의 원전 정책만을 반대한다”

그는 이번에도 기자의 질문을 피해 나갔고 기자는 다시 그가 피할 수 없는 직접적인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아베 정권은 무라야마 담화, 고노 담화를 지지하고 있고 이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럼 고노 다로 의원님은 아베 정부를 지지하나요.

“저는 오직 아베 정부의 원전 정책 부분만을 반대합니다.”

—최근 일본과 중국 간 영유권 다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우선 아베 정부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베 총리는 한국과의 관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중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이런 관계 개선을 위해서 어떤 조언을 하고 싶나요.

“불과 몇 년 전에 한일관계는 정말 최고였습니다. 약 300만의 관광객이 한국과 일본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한국 가수와 한국 드라마가 미치는 일본 내 영향력은 엄청났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 음악을 듣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시 한일 FTA(자유무역협정)까지 논의할 정도로 친밀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해 일본 천황의 사죄를 촉구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양국이 반드시 다시 협상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한국이나 일본 단독적인 것이 아니라 반드시 양국이 관계 개선을 위해 만나야 합니다. 그럼으로써 경제적으로나 안보적으로나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현재 일본의 자민당이 보는 북한은 어떤 것입니까.

“강제로 북송된 일본의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한국 남자와 결혼해서 북한이 최고의 낙원이라고 속아서 북송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반드시 돌아와야 합니다. 북한은 항상 인권문제와 핵무장에 대한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 행위는요.

“북한과 일본, 양국 간의 대화가 갑자기 단절되었습니다. 아마도 김정은 정권 아래 군부에서 누군가가 이런 협상을 싫어하는 것 같습니다.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미사일 발사는 별로 좋지 못한 것 같습니다. 제 견해로는 김정은은 북한을 100% 장악하고 있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보고 중국과 한국의 친밀한 외교에 북한이 악심을 품은 것이라고도 보는데요.

“그럴 수도 있겠죠. 그 이유를 누가 알겠습니다. 확실한 것은 시기적으로 부적절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가 유대인 학살 현장 등을 방문하면서 사죄하는 모습을 보고, 왜 일본은 저런 진정성 있는 사과를 한국에 하지 않느냐고도 합니다. 이렇게 일관되지 않은 일본의 태도를 나무라기도 하는데요.

“일관되지 않다고요? 어떤 부분이요.”

—일본 정부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입니다. 독일 정부가 나치 무덤을 방문하지 않는 것과 달리 일본은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중국도 분노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야스쿠니를 가지 않다가 잊을 만하면 다시 또 방문하는데요, 왜 그런 건가요.

이 질문에 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입을 열었다.

“일단 우리 일본은 무라야마 담화 이후 이 내용을 반대한 내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 일본이 중국에 설명한 내용

그는 이 말을 마치고 잠시 동안 침묵하다가 기자에게 질문을 했다. 다음은 기자와 고노 다로 의원이 주고받은 대화이다.

“누가 신사참배를 하면 안 되는 줄 압니까? 가면 안 되는 사람은 바로 일본 총리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환경부 장관이 신사참배를 가면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왜 그렇죠?”

—사실 한국인 모두의 생각은 아마 누구도 야스쿠니 신사에 가면 안 된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누가 가더라도 싫어할 것 같은데요.

그러자 그는 웃으면서 말했다.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1970년대에 일본의 다나카 총리가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서 중국을 방문합니다. 당시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 중국 정부에서는 일본 정부를 상대로 양국 간의 관계 개선을 대가로 두 가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첫째는 대만과의 관계를 끊으라는 것이었고, 둘째는 중국에 전쟁 피해보상금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도대체 얼마의 보상금을 주어야 하는지 고심했습니다. 고민 끝에 다나카 총리는 마오쩌둥에게 ‘중국이 전쟁 피해자이지만 사실 일본도 전쟁의 피해자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에서 전쟁을 주도한 일부 나쁜 전범들을 제외한 일본의 무고한 시민들도 피해자다. 따라서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마오쩌둥을 설득했습니다. 당시 일본으로부터 아무런 돈을 받지 못한 중국 국민들은 중국 정부에 화를 냈습니다. 왜냐하면 중일전쟁(Sino-Japanese War) 당시, 중국이 일본에 빼앗긴 돈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다나카 총리의 설득으로 인해 중국은 돈을 받지 못했고 중국의 집권당인 공산당은 이런 사실을 중국 국민들에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외교를 마무리 짓고 다나카 총리는 물론, 이후 정권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나카소네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했고 중국은 극도로 흥분했습니다. 전범을 참배한다는 것은 곧 다나카 총리의 주장을 무효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야스쿠니 참배는 곧 중국에 일본이 피해보상금을 지불해야 할 명분을 만드는 행위인 셈입니다.

당시 중국에 다나카 총리와 함께 찾아가 이 내용을 전달한 사람은 3명의 고위직입니다. 총리, 관방장관, 그리고 외무장관입니다. 따라서 이 세 직책의 사람은 이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중국은 그 뒤로 야스쿠니에 환경부 장관, 경제부 장관이 가도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시 약속을 했던 세 가지 직위에 있는 사람은 가면 용납할 수 없다고 중국은 생각합니다.

사실 야스쿠니에 가는 일반인들은 죄가 없습니다. 거기에 잠든 사람들은 그들의 아버지이자 할아버지이며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젊은 일본인들과 중국인들은 야스쿠니에 얽힌 이런 이야기를 모릅니다. 젊은 일본인들은 중국의 격분하는 태도를 보고 ‘왜 중국은 일본의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느냐’고 말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젊은이들도 ‘왜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에 가면 안 되는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본의 국회의원이 야스쿠니를 가는 것만으로도 중국인들이 화를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역사적인 내용을 좀 알았으면 하는 생각입니다.

즉 문제는 야스쿠니에 누가 가도 되는지 그리고 누가 가면 안 되는지를 구분조차 하지 않고 싸우는 것입니다. 이는 복잡한 사안입니다. 일본 언론에서는 야스쿠니에 몇 명의 의원이 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 친척 중에도 필리핀에서 전쟁 중에 전사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조상이 죽은 날, 야스쿠니에 저와 저의 아버지(고노 요헤이)는 참배를 드리러 갑니다. 이게 무슨 문제인가요?”

—그럼 야스쿠니에 대해서 두 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왜 사람들이 야스쿠니 신사를 꼭 가야 하는지와 왜 그런 전범들이 야스쿠니 신사 한 곳에 합장(合葬)이 되었나요. 다른 곳에 묻을 수도 있는데 말이죠.

“전쟁이 있기 전에 야스쿠니는 본래 정부가 운영하는 국립묘지(성지)였습니다. 그런데 전쟁 직후 만들어진 새로운 헌법에서 정부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야스쿠니 묘지는 다른 여러 묘지와 다를 바 없는 그저 묘지일 뿐입니다. 마치 기독교 교회와 마찬가지입니다. 즉 종교의 일환이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어떠한 조치를 가할 수가 없습니다.”

“한일 양국 협력 정신 되살려야”

—그럼 정확히 언제부터인가요. 전쟁 직후부터 그렇게 된 것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전쟁 직후 새 헌법에서 정확히 정부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어떠한 제재도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야스쿠니는 독립적인 종교적 장소입니다. 따라서 이를 추종하는 극우 성직자가 ‘모든 전범은 전범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합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행동은 종교적인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끼어들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전범의 합장을 결심한 극우 성직자가 누구인가요.

“안타깝게도 그 사람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네요.”

고노 다로 의원과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마치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일반적인 종교 활동에 찬물을 뿌리는 행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일본인들에게도 자신들의 조상을 숭배할 권리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될 만큼 그의 의견에 동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과거의 업적은 시간이 지날수록 역사의 냉정한 심판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기자는 마지막으로 《월간조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를 물었다.

“제가 잘 기억은 안 납니다만 1998년 FIFA(국제축구연맹) 프랑스 월드컵 경기 이전에 있었던 한일 축구 예선전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한 경기를 더 지면 월드컵 진출이 불가능했고, 한국은 이미 월드컵 출전이 확정된 상황이었습니다.

당시 한국 측 관중석에 걸린 대형 현수막 문구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let’s go France together(프랑스로 함께 가자)’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축구를 같이 보던 제 친구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한국이 우리 일본을 위해 져주겠다는 것이냐?’고. 당시 실제로 일본이 이겼고 그 플래카드의 말처럼 한국과 일본은 프랑스에 함께 갔습니다. 우리 일본인들은 당시 한국 측 관객석에 걸려 있던 그 현수막을 잊지 못합니다. 그리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그런 정신(spirit)이 한일 양국 간에 형성되었으면 합니다. 이번 월드컵도 우리(한일)는 함께 갔다가 함께 돌아왔습니다. 역사적으로도 2000년 전에 우리, 일본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사람들입니다. 안타깝게도 한국과 일본의 언론보도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싸움은 정말 불필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언론이나 특정 정치인의 잘못이라고 지적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뭉치려는 정신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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