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categorized

모방이 정녕 창조의 어머니인가?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창조경제는 창조의 법적보호에서 출발

본문이미지
박근혜 대통령이 부산의 창조경제혁신센터를 방문해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기사의 내용과 무관함) 사진=조선일보 전기병
창조(創造). 이 단어의 정의는 이렇다.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듦.” 여기서 중요한 대목은 전에 없던 것이라는 점이다.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든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탐구와 거듭된 실패를 딛고 이겨내야 한다.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실패한 것이 아니다. 단지 1만 번의 작동되지 않는 방법을 깨우쳤을 뿐이다.” (I have not failed. I’ve just found 10,000 ways that won’t work)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낸 창조는 실로 대단한 노력의 산물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평생을 바쳐 만든 무언가를 단순히 모방해낸다면 어떨까.

모방(模倣). 사전적 의미는 “다른 것을 본뜨거나 본받음”으로 되어 있다. 남이 만든 것을 모방하는 것이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유명 가수의 신곡이 표절 논란의 중심이 되는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이유다. 음악계뿐 아니라 유명 작가의 소설이나 시집 등에서도 표절이 도마 위에 올라 당사자들이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일본의 소설이나 내용을 무분별하게 가져다 쓰고도 자신의 것인 냥 행세를 하기도 했다.

국내의 한 제빵 회사가 외국 작가가 그린 그림을 모방해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한 경우도 있었다. 학계의 논문 표절은 수시로 시비를 일으키고 있는 모방 사례다.
표절은 기자들 사이에서도 흔한 일이다. 어느 기자가 작성한 기사와 동일한 주제를 취재 아이템으로 삼거나, 동일한 취재내용을 조금씩 바꿔 보도하는 식이다. 특히 시간이 지나도 사회적으로 거듭 발생되는 주제의 경우 그런 사례는 더 많다. 특정 통계치나 혹자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그 출처를 밝히지 않는 행태도 자주 볼 수 있다.

기업에선 회사 매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부하 직원의 획기적인 아이디어 제안이나 중요한 보고서를 상사가 자신이 작성한 것처럼 보고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빼앗는 행위가 기업 내에서는 악습으로 고착화 된지 오래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왜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것인가.

한국의 표절관련 판례를 살펴보자.

한국에서는 그 판단기준이 어렵다는 이유로 표절시비에 휘말린 작품 등에 모호한 판결을 내린 경우가 꽤 있다. 논문표절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논문 대필만 전담해주는 업체들이 성황리에 영업을 하고 있다.

논문 대필에 ‘업무 방해죄’를 적용해 판결한 대법원 판례가 있으나, 대필이나 모방에 대한 처벌은 일반적으로 미미한 실정이다. 표절과 저작권법 침해의 구분도 모호하고 명확한 판례가 내려진 경우도 드물다. 표절을 했다고 10년 이상의 중형을 선고했다는 판례를 국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한마디로 솜방망이 처벌인 셈이다.

모방을 했다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거나, 모방을 했다고 보기 어렵다거나, 더 시간을 두고 확인을 해봐야 한다는 식으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표절 시비에 휘말려도 빠져나올 구멍은 많다. 리메이크, 샘플링, 오마주(hommage, 특정 작품을 존경의 의미로 유사하게 꾸미거나 만듦)의 의미로 삽입했다는 식으로 비켜가기도 한다.

저작권법의 제11장 벌칙을 보면 “저작재산권, 그 밖에 이 법에 따라 보호되는 재산적 권리(제93조에 따른 권리는 제외한다)를 복제, 공연, 공중송신, 전시, 배포, 대여, 2차적 저작물 작성의 방법으로 침해한 자”에 대해 징역 5년이하 또는 벌금 5천 만원이하의 벌금이 내려진다. “저작인격권 또는 실연자의 인격권을 침해하여 저작자 또는 실연자의 명예를 훼손한 자”에 대해서는 징역 3년이하 또는 벌금 3천만원 이하가 내려질 수 있다고 되어 있다.

이를 악용하자면 모방을 통해 수십억대의 수익을 벌고도 벌금 5천만 원만 내면 되는 것이다. 모방을 통해 이윤을 남기고자 하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남는 장사인 셈이다. 아마도 이런 약한 처벌 때문에 끊임없는 표절사례가 나오는 게 아닐까. 이런 솜방망이 처벌로는 향후 대한민국의 창조를 키워낼 수 없는 구조다.

미국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에서는 음반, 도서, 논문 등의 표절은 물론 정치인의 연설까지도 모방에서 예외일 수 없다. 조 바이든 부통령은 과거 1988년 정치인 시절 영국 정치인 및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연설문 내용을 무분별하게 인용해 자신의 것인 냥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은 바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언론사 뉴욕타임스(NYT)에서도 제이슨 블레어(Jayson Blair) 기자가 가짜 인용문을 만들고, 가짜 영수증을 제출하는 문제를 일으킨 바 있다. 그는 사내 다른 기자인 마카레나 에르난데스(Macarena Hernandez)의 기사나 사설 등을 베낀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그의 이름은 미국내에서 ‘표절(Plagiarism)’을 대신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미국에서는 대학에서도 표절에 대한 강도 높은 처벌을 하고 있다. 1982년 미국의 나폴리타노 대(對) 프린스턴 대학(Napolitano VS Princeton Univ) 판례가 대표적이다. 학교 과제로 제출한 12장 분량의 학기말 리포트(term paper)에 대해 프린스턴 대학 측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 리포트 안의 내용 중 일부가 특정 도서의 내용을 출처 없이 인용했다는 것이 발단이 됐다. 결국 나폴리타노 학생은 프린스턴 대학을 1년 더 다니라는 판결을 받아 졸업이 1년 늦어졌다.

국내 대학가에선 과제물을 여러 도서 내용을 짜깁기하는 형식으로 인용하는 것이 빈번하다고 학계 관계자들은 말한다. 이런 내용으로 학생을 상대로 법적공방까지 벌인다는 것은 미국에서 표절과 저작권을 얼마나 중대하게 바라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외에도 삼성과 애플이 개발한 스마트폰의 기술의 특허권을 두고 천문학적인 금액을 벌금으로 물리는 미국의 판례를 보면 미국이 표절을 대하는 태도가 우리보다 진지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모방을 통해 약 300만원(2,500달러)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면 최대 징역 10년의 중형까지도 선고할 수 있어, 한국의 법보다 중대하게 다룬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미국에서는 유명 작가의 사망 이후 약 70년이 지나야만 그 저작권이 사라진다. 그만큼 저작권 유효기간을 길게 잡고 있다.

한편, BBC 방송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온라인 상에서 음원 및 영화 등을 무분별하게 배포해 저작권법에 저촉되는 행위를 한 사람에게 최대 10년의 징역을 처벌하는 법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이는 미국외에 영국에서도 모방과 저작권 침해를 중죄로 본다는 것을 입증한다.

남의 것을 베끼는 것은 쉽다. 그러나 전에 없던 것을 만들어낸 사람의 과정은 어렵다. 만약 모두가 남의 것을 베끼기만 한다면 누가 창조할 것인가. 그리고 이런 창작을 법적으로 보호하지 못한다면 누가 창조를 할 것인가.

창조경제가 화두다. 하나, 창조의 가치를 지켜주지 못한다면 누구도 창조를 하려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스티브 잡스나 토마스 에디슨이 나올 수 없는 이유다. 창의적인 사고력을 길러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창의적인 사고를 보호하는 장치가 먼저 필요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라는 말은 우리가 흔하게 하는 표현 중 하나다. 모방과 창조가 모자(母子)지간처럼 친근한 가족이라 우리는 모방에 따뜻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인가. 미국에서 내리는 모방의 정의는 아마도 “모방은 창조의 악(惡)이다”가 적절한 표현일 것 같다. 더 이상 창조의 앞길을 막는 모방을 수수방관해서는 안 될 것이다. 법적인 강화뿐 아니라 모방은 해서는 안 될 나쁜 행위로 대하는 사회적 풍토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의 헌법에서는 저작권법의 제정 사유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다.

“To promote the Progress of Science and useful Arts, by securing for limited Times to Authors and Inventors the exclusive Right to their respective Writings and Discoveries”

첫 구절에서 “창작물의 저작권을 보호함으로서 예술과 과학의 진보를 보장한다”고 쓰여 있다. 우리도 창조자들의 창작물을 보호해야만 세계를 주도할 한국의 창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등록일 : 2016-05-03 08:53   |  수정일 : 2016-05-03 23:04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