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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역사 교과서는 어떤 모습일까?

어느 교과서를 읽어도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성조기 앞에 눈물을 흘릴 것

글 | 김동연 월간조선 기자/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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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여야의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28일 문재인 대표는 국정교과서 바로잡기 전국버스투어에서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반대하는 야당을 이해 못한다는 여당의 주장은 잘못 되었습니다.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겠습니까?”라며 대여(對與) 공격의 날을 세웠다.
야당의 주된 주장은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북한이나 후진국에서나 하는 것이다. 여론의 다양성이 존중되어야 하는 마당에 국정화는 잘못된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럼 다양성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의 역사교과서는 어떨까. 민주국가의 상징이자 여론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책을 도출하는 미국의 방법이 궁금했다.
기자가 알아본 결과, 미국의 교과서는 국정교과서가 아니다. 여기까지만 들어보면 야당의 주장이 맞다. 그러나 미국 역사교과서의 내용을 펼쳐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미국에서는 역사교과서 뿐 아니라, 과학, 수학 등 거의 모든 과목의 교과서가 다양하게 제작된다. 소위말해 텍스트 북(Textbook)이라고 불리는 이런 교과서들 중 유독 미국의 역사교과서들은 종류가 다양하지만 모두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독재자?
미국의 어느 역사교과서에서도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독재자 혹은 공산주의자 등으로 묘사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종류가 다양한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조지 워싱턴은 위대하고 용맹스럽고 슬기로운 사람이다. 마치 다양한 교과서들 안에서 누가 더 조지 워싱턴 대통령의 치적과 공로를 멋지게 묘사하는지 경쟁을 펼치고 있는듯하다.
실제 교과서의 한 구절을 보면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indispensable man” 미국 역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람’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심지어 많은 학교들에서 미국 역사교과서로 자주 채택되는 Mcdougal Littell의 경우 아예 제목부터 “조지 워싱턴 대통령이 트렌튼, 사라토가(지명) 등에서 보여준 리더십” (George Washington’s Leadership at Trenton, Saratoga & Valley Forge)이다. 야당의 주장대로라면 보수적이며 편향적인 교과서이다. 왜냐하면 아예 제목부터 조지 워싱턴 대통령은 리더십이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를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 한국 야당의 주장을 이 위대하다는 조지 워싱턴 대통령에 덧씌워 본다면 어떨까. 그는 미국을 장기 집권한 독재자이다. 왜일까. 조지워싱턴 대통령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으로서 8년이라는 임기를 지냈다. 이 임기가 1회 임에도 그는 8년의 독재를 한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이 임기의 기준이 “자발적인 임기 기간(Voluntary Presidency Term)”이다. 그렇다. 그는 독재자이다. 말이 좋아 자발적이지 야당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독재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미국의 교과서에서는 이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하지 않을까.
다양성이라는 이름 아래,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드는 한국 교과서들
미국의 헌법에는 국어(모국어, No Official Language)가 명시되지 않았다. 국어가 없는 거의 유일무이한 나라다. 미국의 국어가 영어(English)라고 명시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은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언어를 존중하는 나라다. 가히 다양함의 극치라고 하는 미국에서조차 미국의 초대 대통령은 최고의 대통령이고 미국 국민 누구에게나 존경받는 인물이다.
그럼 왜 미국은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말하지 않을까?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이 초대 대통령이자 건국의 아버지인 조지 워싱턴 대통령을 폄하하고 독재자라고 하는 순간 미국은 스스로를 부정하게 된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시작된 순간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한마디로 내일의 미국은 없고, 미국의 내일을 짊어질 아이들에게 가르칠 것이 없다. 민주주의는 붕괴하게 된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은 초대 대통령을 다양한 교과서에서 모두 하나같이 한 목소리로 칭송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어떤가. 우리는 우리나라의 시작.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있는 꼴이다. 이승만이 없다면 오늘의 대한민국도 없다. 내일이란 없다. 결국 여기서 우리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승만을 독재자라고 말하는 순간 민주주의의 근간이 송두리째 흔들린다. 대한민국의 법치와 정의가 붕괴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국가가 아닌 것이다.
12년동안 집권한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
과연 다양성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다양성이란 포장지로 감싼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부서져버린 민주주의를 보여주겠다는 말인가.
우리의 역사교과서와는 달리 미국의 역사교과서에서 민주주의를 강조하고 미국의 성장을 강조하는 부분은 여러차례 나온다. 특히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에 대한 부분은 참으로 방대하다. 그는 미국 산업화의 아버지이자 미국을 폭발적으로 발전시킨 대통령이다.
그의 이런 산업화 공로는 대한민국의 박정희 대통령과 비견된다. 이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임기는 얼마나 될까. 무려 12년이며, 대통령 임기로는 4번이다. 안타깝게도 마지막 4번째 임기를 마치지 못한채 별세했다. 그는 12년 동안 미국의 대통령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미국 역사 교과서 그 어디서도 그를 독재자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혹자가 그런 표현을 붙인다면, 아마 그는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받을 것이다.
오히려 루즈벨트 대통령의 긴 임기 동안 그가 이룬 업적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런 예는 앞서 언급한 Mcdougal Littell 등 다수의 교과서에서 목격된다.
그의 임기별 업적은 물론, 처음 그가 집권하고 난 100일 동안의 추진 방향(The First 100 days) 등을 묘사했다. McGraw-Hill의 역사교과서 19장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의 업적을 별도의 단락에서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가 집권하는 동안 미국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었다. 이런 큰 역사적 사건이 있었음에도 미국 국민 모두가 당시 국가적 위기는 루즈벨트 대통령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그가 있었기에 미국은 어려운 고비를 잘 넘겼다고 말한다.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서 산업화는 분명 주목받는 부분이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물론 미국의 철도왕으로 불리는 밴더빌트(Venderbilt), 미국 철강의 신화,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  등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이 산업화 부분에 방대한 양을 할애하여 다루고 있다. 한국의 정주영과 이병철 등과 비견되는 인물들이다. 하나, 현재 한국의 교과서에서 이런 대한민국의 산업화 부분은 별로 부각되고 있지 않다. 세계적으로 전례없는 고도성장을 이룬 우리의 업적이 부끄러운 일인가.
미국에서도 목격되는 대통령 장기집권은 민주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반드시 수반되는 부분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더 나은 민주주의가 확립된다.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이 패배했다고?
이 외에도 수많은 예가 다양한 미국의 교과서에는 등장한다. 일례로 베트남 전쟁을 다룬 부분이다. 미국의 교과서에서 하나 같이 베트남 전쟁을 미국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말한다.
그 어디서도 “미국이 전세계의 경찰노릇을 자처하고, 동남아까지 가서 다른 나라를 무참히 짓밟았다”라는 식의 비판 내용은 흔적조차 찾을수 없다. 이런 비판이 대학이나,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고는 있지만 이런 내용이 미국 역사교과서에서는 철저히 배제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을 과오로 인정하는 순간 미국의 위대한 민주주의와 민주주의를 찾기 위해 싸운 전쟁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역사교과서가 존재한다. 그러나 그 중 어느 교과서를 집어 읽어도 책장의 마지막 장을 덮을 무렵 당신은 휘날리는 성조기 앞에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리고 미국 국민임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고, 미래의 아이들에게 자랑스런 미국의 역사를 가르치고 싶을 것이다. 이런 역사는 미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인종과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모두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것이 오늘의 미국을 만들었고, 민주주의의 표본을 만들었다.
대한민국에서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비참하고 통탄스럽다. 다양성이라는 방패 뒤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정교과서를 만들겠다고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공언한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은 막중하다. 전 국민이 보고 있는 사안에 대해서 어찌 야당의 우려대로 우편향된 교과서가 나올 수 있을까. 아마도 박 대통령은 이런 부담을 떠안고도 민주주의의 근간이 흔들리는 역사교과서 문제를 방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국정교과서라고 할지라도 정부 중재 교과서이다. 왜냐하면 여당과 야당의 의견을 똑같이 수렴하고 이견을 나타내는 학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기 때문이다. 양쪽의 이야기를 정부가 중재하여 담아낸다면, 이것이 과연 야당이 우려하는 교과서일까? 야당의 주장대로 정부 주도 아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 되지 않을까?
김무성 대표가 ‘국정화’라는 네이밍(naming)의 문제를 언급했다. 국정화가 너무 강제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 국민과 여론에 나쁜 인상을 심어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대체어를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정교과서는 일방적이거나 편향되지 않은 정부중재 교과서가 아닐까.

등록일 : 2015-10-30 08:08   |  수정일 : 2015-10-30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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